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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억새꽃 은빛물결 화서문과 서북각루 풍경

억새의 은빛물결 수원화성.화서문과 서북각루의 풍경..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성곽의 서북각루 밖에는 억새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초겨울 날씨속에 결실을

맺은 억새꽃이 하얀 솜털을 펼쳐 놓은 것처럼 눈부신 하얀눈밭을 연상 시키며. 관광객과 시민들 사진작가?

를 희망하는 아마추어 진사님들의 억새밭 군락지에서 황홀함을 만끽하며 연실 카메라 앵글에 촛점을 맞추며

억새밭 은빛 물결속에서 아름다움을 담아 내느라 혼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고유의 건축양식에 감탄하고, 황홀한 석양을 받아 은빛으로 물든 억새꽃의 아름다움에 정신마져 꿈꾸듯

그 아름다운 억새를 쫒아.화서문에서 서북각루 까지 우리 조상님들의 얼이 담긴 건축 양식도 감상 하시면서..

수원화성 억새군락지 성곽 둘레는 5,744m의 서쪽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에서 서장대 사이의 서북각루 밖에 위치

해 있으며,서북각루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억새의 아름다운 물결을 감상 할 수 있고, 200년의 세월을 이겨낸

수원화성의 성곽과 어우러져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황홀한 풍경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화서문 옆에 조성된 화서공원의 초겨울 운치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나무에 낙옆은 모두지고 관광객들이 아름다음에 빠져 담소하고 있다.

 

 

초겨울 코스모스도 아직 피어 있내요.

 

 

성벽을 타고 오르는 붉은 담쟁이..

 

 

 서북공심돈과 화서문(華西門)

화서문(華西門)은 보물 제403호로, 수원 화성의 서문이다.

좌우 성벽에 연결되는 돌로 된 기부에 홍예문(虹霓門)을 두어 그 위에 단층의 문루를 세웠다.

문의 앞부분에는 반달형으로 된 전축(塼築) 옹성(甕城)이 있는데 높이는 안쪽이 2.62m, 바깥쪽이 3.65m, 두께는 3.25m이다.

이 옹성은 한 평이 트여 있어 문을 출입할 때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1975년 수원 화성 중수 공사할 때 보수되었다.

 

 

 

 

 

서북공심돈 (보물 제1710호.2011.3,3.) ↑

 

화성의 화서문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정조 20년(1796)에 건립되었다.

수원 서북공심돈은 화성 서북측 성벽에서 돌출시켜 남측면의 일부만 성곽에 접하고 나머지 3면이 돌출된 평면을 이루고 있다.

3층 구조로 하부 치성(雉城)은 방형의 석재를 사용하였고 1층과 2층 외벽과 3층 하부는 전돌로 쌓았다.

1, 2층 각 면에는 6개의 총안(銃眼)이 있으며, 3층에는 여장(女墻)을 쌓고 같은 높이에 4개의 총안을 내었다.

3층 포루(鋪樓)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벽면 위쪽의 판문에는 전안(箭眼)이 설치되어 있다.

치성의 북측면과 서측면에는 각 2개소의 현안(懸眼)을 두어 성에 접근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화서문(華西門)

 

 

 화서문(華西門)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과 왕권 강화를 위한 수도 이전을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성문으로 정조 20년(1796)에 지어진 수원 화성의 사대문 중 서쪽 문(화서문)이다.

돌로 쌓은 무지개문 위에 단층의 다락집(문루)을 올렸고, 낮게 쌓은 담으로 사방을 둘렀다.

남쪽문인 팔달문이나 북쪽문인 장안문과는 다르게 문의 전면에 한쪽이 열려있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화서문 옆에는 전쟁시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 역할을 하는 서북공심돈을 배치했는데,

이렇게 망루 안의 중앙 공간을 비워서 축조한 것은 우리나라 성곽 중 수원화성이 처음이다.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호.2011.3.3.) ↑

 

 화서문 밖 주막에 얽힌 화성 축조의 비화 

화성을 축성할 때 비용이 89만냥 정도 들었다고 한다.

나라의 재정을 휘청거리게 할 만한 큰 액수였기 때문인지 재정마련에 대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정에서 직접 화서문 밖에 주막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화서문 밖 주막은 기존의 주막들에 비해 공사장과 가깝고 주모가 예뻤기 때문에

품삯을 받고 한 잔 하러 온 인부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당시 공사에 참여한 인원이 대략 1만 2천 여 명 정도 인데

공사 현장 주변에 주막이 하나 밖에 없었으니 장사가 워낙에 잘되었다.

그런 탓에 화서문 밖 주막은 관(官)과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화성을 짓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나라에서 직접 주막을 운영한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장안의 화제였던 이 이야기는 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 퍼온글-

 

 

 송충이도 씹어 먹은 정조의 효심” 

정조는 화성으로 아버지의 묘를 옮긴 후 그 전보다 더욱 자주 찾아가 인사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융건릉을 찾은 정조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묘 주변 소나무들이 송충이 때문에 다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는 “어허, 이럴 수가. 내 땅에 사는 송충이가 어찌 임금의 아버지 앞에 있는 소나무 잎을 갉아먹는단 말이냐.

내 아버지가 비명에 가신 것도 가슴 아픈데 너희들까지 이리 괴롭혀서야 되겠느냐.

차라리 내 오장육부를 갉아 먹어라”라고 한탄하며, 송충이 한 마리를 잡아 입안에 넣고 깨물어 먹어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와서 송충이를 다 잡아 먹어,

소나무에는 송충이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지망생들이 열심히 촬영하는 모습...↕

 

 

 

 

 

 

 

 

 

 

 

 

 

 

 

 

서북각루

성곽의 비교적 높은위치에 누각을 세워서 성곽주변을 감시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물이다.

서북각루는 팔달산 북쪽 중턱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누각 아래는 온돌방을 설치해 군사가 숙식하며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서북각루 아래 ..갈대꽃밭 에서 추억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한국의 10대 명산중 하나 광교산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

 

 

 

 

 

 

 

 

 

솜털같이 포근한 억새 꽃이 장관이지요..↓

 

 

 

 

오리털 같기도 합니다.

 

석양이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을 합니다.

장비를 챙기고 다시 화서문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야경촬영에 몰두합니다.

다음편은 화서문과 서북각루의 아름다운 밤하늘에 야경을 감상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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