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여행/경기도

명성황후 생가 견학

 

역사 바로 알기

명성황후는 위대한 국모였다
정치의 주도세력일 뿐 아니라 외교 일체를 고종황제에게 진언하는 일급참모인 명성황후는  '인아거일책 (引俄拒日策)'으로 일제를 철저히 견제해 나갔다. 명성황후로부터 철저히 배제 당한 일제는 황후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자기 세력을 부지할 수 없고 조선침략을 수행할 수 없는 최대의 걸림돌로 판단했다.

이미 1895년 초부터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 사이에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여우(황후)를 사냥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고 한다. 일본 총리대신 이토오 히로부미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그녀의 위대함 놀라고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국모를 시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 속에 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또한 앞서 기술했듯이 황후시해사건 현장에 있었던 ‘한성신보’ 기자 고바야카와는 “(당시 일본으로써는) 대표적 인물인 민황후를 제거하여 조선과 러시아가 결탁할 여지를 없애는 것 밖에는 방책이 없었다. ...중략... 조선의 정치 활동가 중에도 그 지략과 수완이 일개 민후의 위에 가는 자가 없었으니, 민후는 실로 당대 무쌍의 뛰어난 인물이었다.” 라고 훗날 기록했듯이 이는 황후가 비열한 3류 사무라이 나라 일제에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일제로써는 명성황후를 제거해야 할 직접적인 표적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고종,조선 제26대 왕(1863~1907 재위).자본주의 열강이 침입하는 중에 재위했다.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뒤 황제라 칭했고, 광무개혁을 실시했다. 1907년에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해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한 부당성을 세계에 호소하고자 했으나, 이 사건으로 폐위되었다.

1919년에 죽었는데 그의 독살설은 3·1운동의 한 계기가 되었다. 

 명성황후 기념관 전경  

  ↓ 명성황후 기념관 앞 연못  ↑

  명성황후 기념관 앞 연못  ↑

 본관은 여흥.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치록(致祿)의 외동딸이다. 8세 때 부모를 여의었기 때문에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1866년(고종 3) 3월, 16세 때 부대부인 민씨(府大夫人閔氏)의 추천으로 왕비가 되었다. 

 고종,명성황후 초상화 

 1895년 을미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을 난입한 일본인들은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강간한 후 처참하게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참담한 만행을 저지른다. 이 사태는 인간 아니 국가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후안무치한 사태였고 비열한 3류 사무라이 나라 일본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오늘날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이 사태는 일본과 무관한 것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명성황후 생가 앞 뜰  

 경기도 여주읍 소재 명성황후 생가 

명성황후 생가 뜰안채 

 명성황후 생가 내부 

 하녀들의 베짜는 모습 재현

 하인들의 짚신 만드는 과정 재현 

짚신 묶움  

 전통혼례 복식체험장

  전통혼례 체험장, 생가 바로 옆에 있다.  

 感古堂명성태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1851년 음력 9월 25일~1895년 음력 8월 20일(양력 10월 8일))는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왕후이다. 시호는 효자원성정화합천홍공성덕명성태황후(孝慈元聖正化合天洪功誠德明成太皇后). 사도시 첨정으로 사후 영의정, 여성부원군에

추봉된 민치록의 딸이자 어머니는 감고당 한산이씨이다. 아명은 자영(玆暎)[1], 본관은 여흥이다. 경기도 여주군 출신.(여주 나들목 인근에 생가 공원이 있다.) 

 감고당 내부 

 감고당(感古堂),한옥의 아름다움. 

 

 감고당,안채 

感古堂 앞 마당 

명성황후 장례식 재현

 웨베르는 이 보고서에서 황후의 최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면서 비열한 3류 사무라이 나라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본 낭인들은 왕비 마마가 복도로 달아나자 뒤쫓아가 바닥에 쓰러뜨리고, 가슴 위로 뛰어 올라 세 번 짓밟고 칼로 시해했다. 몇분 후 시신을 소나무 숲으로 끌고 갔으며 얼마 후 그 곳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명성황후 추모비가 기념관 앞에 세워져 있다.

 

 명성황후는 구한말 고종의 왕비로 대한제국기 최초의 황후였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기에 뛰어난 결단력을 갖고 고종 이상의 정치력을 행사하여 ‘구한말의

여걸’ 이라 불리었으나,일본에 의해 무참히 시해되어 근대 민족수난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민비는 1851년 9월 25일 경기도 여주에서 여흥 민씨 치록의 딸로 태어났다.

 

 

2010,6,26,산마조아,말아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