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으로보는../풍경사진

화성행궁 광장 고귀한 상징적 신풍루 느티나무 자태

화성시 숲 안내, 해설사 교육을 마치면서 다시 찾은 수원화성 행궁을 둘러 보면서 정문 앞뜰에 위풍 당당하게 자리한 

수 백년을 지켜온 느티나무가 아직끼지 팔달산 기슭 아래서 살아 숨쉬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내,외 관광객들의  발길

을 훨씬 시원하게 해 줍니다.   화성행궁 앞  느티나무는 350여 년의 고목으로서  궁궐의 조정제도에 의해서 품,(品)자

형태로 심어진 것입니다.영의정을 비롯 삼정승이 이 나무 아래에서 어질고 착한 사람을 맞이하여 올바른 정치를 베푼

다는 아름다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푸르름에 싱그러운 느티나무.. 목본의 숲에 대하여 공부 한대로 올려 드립니다.

 

목본 숲의 생태학 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나무의 기능은 이산화질소의 흡수 및 정화에 탁월하며 잎의 배향성으로 인하여 소음의 분산 및 흡수,오염물과 분진 등 

중금속의 정화 기능과 흡착의 탁월성 땅속의 중금속을 흡수 및 고정을 시켜주는 역활을 합니다.   가로수와  정원수의

자격기준은 잎이 커야 하며 줄기가 곧게 올라가야 합니다.공해에 강해야 하며  나뭇잎이 많고 수관이 확대되어 그늘이

만들어지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요.가능하면 열매를 맺는 유실수가 좋으나 꽃을 피우는 가지나무가 한층 더 좋습

니다.가을에는 오색으로 아름다운 단풍이 들면 금상첨화 이겠지요.화성행궁 앞 고귀한 상징적 느티나무 자태 입니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를 계속 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행궁 등이 있고,  온양행궁은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으로 조선 세종이래 역대 왕이 즐겨 찾던 곳입니다.

 

 

화성행궁앞에 세워진 하마비..

 

 

하마비 (下馬碑)

조선 시대, 종묘나 궐문 또는 문묘 따위의 앞에 세워 놓은 비석..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0년에서 1795년(정조 14∼19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다. 그 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성행궁 앞뜰..위풍당당 느티나무..

 

 

화성행궁 정문 앞에 수령 350년 된 느티나무입니다.

 

 

외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매표소앞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화성행궁,신풍루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신풍루

입구에서 바라본 광경입니다.

 

 

신풍루 안쪽에서..

팔달산 정상에 서장대가 보입니다.

 

 

신풍교 복원과정에서 발견된 자재입니다.

 

 

 

 

 

 

 

 

 

관광객들 기념촬영도 하고...

 

 

 

 

 

 매표소앞 보호수 느티나무..

 

 

 

 

 

 

 

 

 

 

 

화성행궁 광장에서 바라본..신풍루 입니다.

 

 

 

 

 

 

 

 

 

화성행궁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부 유수(留守)가 집무하는 내아(內衙)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1789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 이후 이듬해 2월부터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을 거행하였으며

이때마다 정조는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조가 승하한 뒤 순조(純祖) 1년(1801) 행궁 옆에

화령전(華寧殿)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眞影)을 봉안 하였고 그 뒤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