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여행/경기도

[경기화성]조선후기 황금문화를 이룩한 효의표본 융릉과 건릉

오늘은 사적 제 206호 화성 융릉과 건릉 (隆陵과 健陵) 에 대하여 조선 22대 임금 정조대왕의 친부인 사도세자와 모친인

혜경궁 홍씨 융릉과,  본인과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인 건릉에 대하여 역사적이고 효의 근본인 19세기 무덤의

제도와 그 가치가 높은 새로운 표본에 대하여.주변을 영상으로 돌아보시면서 조선후기의 황금문화에 대하여 지난번 약속

드린바와 같이 날씨도 몹시 추운가운데 화성시 안녕동에 소재한 웅건능에 대하여 촬영한 영상을 올려 드립니다.

 

설 명절과 연휴 가족모두 함께 모인 가운데 아침 일찍 웃 어른들께 세배와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조상님들께 효를 다하는

차례상과 추모예배로 정성을 다하시고 이웃 친인척 세배손님 접대상 준비로 피곤함도 잊은채 그래도 민족 최대의 설 명절

즐거움과 행복한 일정 잘 보내시고 집으로 오셨지요.더불어 새해 덕담도 나누시며 즐거운시간 보내셨으리라 생각 합니다.

 

설 연휴도 모두 끝나고 짧은 일정에 피곤함이 더욱 가중되어 귀경길 장거리 운전으로 몰롱한 상태로 어제 첫 출근하여 일상

으로 복귀도 하시고 월요일 같은 수요일 일손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힘들고 어려운 설 음식 장만으로 수고하신 아내들을

생각 하시면서 조금이나마 위로도 드리시고 가족모두 서로 격려하며 기쁨과 감사한 아내들에게 사랑스런 배려와 포근한 말

한마디가 온몸의 아픔과 마음의 피로를 씻어 줍니다.아내들도 남편을 위한 포근한 말씀으로 자녀들에게는 가르침없는 교육

살아있는 부모님과 웃 어른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효의 초석이 될것 입니다.   가족간 유대강화를 위하여 모두함께 노력하는

지혜로 2012년 임진년 새해에는 온 가족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이마와 근육에 힘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융,건릉 입구

 

 

 

 

 

 

 

 

 

 

 

 

 

 

융,건릉 진입로

묘역주변에는 울창한 산림을 유지하기 위해 수목의 종류와 그루 수를 지정하여 틀별관리하였으며,

매년 두 차례씩 묘역의 전반적인 상태를 왕에게 상세히 보고하여 능이 항상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였다 하니 오늘날 유네스코가 그 진가를 인정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융릉 입구

융릉은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무덤입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 하였고, 1899년에 의황제로 봉해졌다.

이때 혜경궁 홍씨도 의황후로 봉해졌다.

 

 

융릉은 원래 양주의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다.

합장릉인 융릉은 병풍석을 세우고 모란과 연꽃무늬를 새겼다.

석등은 전기의 8각형과 숙종, 영조대에 등장한 4각형 석등의 양식을 합한 새로운 양식으로 건릉과 예릉의 기준이 되고있다.

 

 

무덤의 석인도 사실적이고 예전에 가슴까지 숙여진 머리가 들려 있어 시원한 분위기를 내며,

문인석에서는 머리에 금관을 쓴 예가 나타나고 있어 19세기 이후의 무덤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조는 현륭원을 마련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홍살문

능에 닥아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왕능의 정문인 홍살문이다. 홍문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본래 궁전, 관아, 능, 원(園 : 세자나 대군, 공주 등의 묘)등의 앞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신성한 곳을 알리는 문이다.

 

 

 

 

 

제향공간 입니다.

죽은 자와 산 자와 함께 하는 영역으로 제사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수라간

제 음식을 보관하고 만들었던 간이 수라간 입니다.

 

 

 

 

 

 

 

 

융릉침 공간 입니다.

왕과 왕비의 봉분이 있는 성역 공간 입니다.

<사도세자.혜경궁 홍씨 무덤>

 

 

 

 

 

 

 

 

 

 

 

융릉 비문

 

 

 

 

 

 

 

 

 

 

 

 

 

 

 

 

 

 

 

 

 

 

 

융릉과 건릉 전역에 빽빽히 들어선 노송에 백설이 덮힌 풍경은

세인들의 마음을 무아의 경지로 빠지게하는 장관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건릉 입니다.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와 그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정조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많은 인재를 등용하고, 조선 후기의 황금문화를 이룩하였다.

 

 

건릉은 현융원의 동쪽 언덕에 있었으나

효의왕후가 죽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하였다.

무덤은 한 언덕에 2개의 방을 갖추었으며 난간만 두르고 있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혼이 앉는 자리인 혼유석이 하나만 있으며, 융릉과 같이 8각형과 4각형을 조화시켜 석등을 세웠다.

문무석은 사실적이며 안정감이 있는 빼어난 조각으로 19세기 무덤의 석물제도의 새로운 표본을 제시하였다.

 

제향공간 입니다.

죽은 자와 산 자와 함께 하는 영역으로 제사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융릉하고 규묘가 같습니다.

 

 

 

 

 

 

 

 

건릉침 공간 입니다.

정조대왕과 왕비의 봉분이 있는 성역 공간 입니다.

< 정 본인과 부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

 

 

건릉 비문

 

 

 

 

※(융릉·건릉 → 화성 융릉과 건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